우리 영혼은 별과 별 사이로 윤회전생한다.
화이트홀
2008-04-17 12:06:47 │ 조회 2087

우리 영혼은 별과 별 사이로 윤회전생한다. 


 

 


최고의 영매자 에드가 케이시의 생애

 

심령치료사, 대예언가 혹은 기적의 사나이로 불렸던 불가사의한 사람 에드가 케이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인간의 비밀을 파헤친 '20세기 정신과학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 글은 《그노시스(Gnosis)》지(紙) 1997년 겨울호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에드가 케이시의 생애와 사상은 19세기 미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여러 종교 신비주의 선각자들의 삶과 사상을 거의 모두 담고 있다. 참 신비한 일이다. 케이시는 몰몬교를 창도했던 조셉 스미스(Joseph Smith)처럼 유년 시절에 천사와 만나는 체험을 했고,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에게 영매(靈媒)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또, 케이시만이 보고 읽을 수 있었던 하늘의 문서들이 있었는데, 이 문서들을 읽어냄으로써 새로운 미래 역사관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역주: 케이시가 최면에 걸려 잠을 자듯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 이 하늘의 문서들을 읽고 말하는 것을 리딩(reading)이라고 하고, 그 리딩을 받아쓴 기록들 또한 리딩(readings)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어록”이라고 번역한다.) 

 

켄터키주에 있던 케이시의 집은 19세기 초기 이래로 기독교 부흥회의 영향력이 컸던 지역에 있었다. 마치 몰몬교가 발생했던 뉴욕 주 북부가 몰몬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케이시의 생애에서 전환점은 자기 자신의 병을 고치는 능력을 발휘했던 때였다. 기적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남들을 치유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매리 베이커 에디와 쌍벽을 이룬다. 매리 베이커 에디는 기독 과학(Christian Science) 협회를 설립했고 독자적으로 성공한 능력자였다. 


케이시는 제 7일 예수 재림교(seventh-Day Adventism)의 여류 예언자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처럼 성서 중심적인 세계관을 건설했다. 그 중심 축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요법” 사상이었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과학적 탐구로 보이는 것이었으나, 실은 그가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받은 계시로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케이시는 서구 사람들의 의식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윤회 사상을 일깨웠던 사람이었다. 이 점에서 케이시보다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신지학(Theosophy)의 명인 마담 블라바츠키(H. P. Blavatsky)가 있었다. 블라바츠키가 설파했던 이야기들 중에 상당 부분이 케이시의 예언 어록과 상응하고 있다. 대 심령가 앤드류 잭슨 데이비스(Andrew Jackson Da-vis)처럼 케이시 역시 수없이 의료진단을 하고 치료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두 트랜스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트랜스 상태에서 케이시가 얻은 어록 

 

그러나 케이시가 여타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케이시를 여타 종교인들과 같은 부류로 묶을 수가 없는 것이다. 케이시와 그의 추종자들이 설립했던 "연구계몽협회(the Association for Research and Enlightenment)”는 몰몬교나 기독 과학 협회, 제 7일 예수 재림교, 신지학회, 그리고 앤드류 잭슨 데이비스의 심령회(spiri-tualism)처럼 독자적인 종교적 색채를 표방하고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케이시의 연몽회(A.R.E)에서는 추종자들에게 각자의 종교적 믿음을 그대로 지키라고 격려했으며, 케이시의 "어록(readings)”에서 영적 지혜와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방법을 얻어 응용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케이시의 영향력은 당시에 뉴에이지 운동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당시 뉴에이지 조류(潮流)는 어떤 정통적 계보나 주된 세력이 없이 산만한 형편이었다. 사실, "채널(channel, 주파수대)”이나 “뉴 에이지”라는 말들이 제대로 의미를 가지고 쓰였던 것은 케이시의 어록이 최초였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매우 특이한 사실인데, 저 엄청난 분량의 케이시 어록은 49,000쪽이나 되는 것으로서, 그 어떤 영적 지도자들이 말한 내용보다도 많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시 자신은 자기가 트랜스 상태에서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케이시는 죽는 날까지 14,500 항목의 예언을 했다. 그는 한 번 트랜스에 들어갈 때마다 한 가지의 메시지를 말했는데, 대개 개별적인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리딩 어록에 있는 이런 말들은 각개인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조언(助言)들이었던 만큼 각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말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그런 그의 어록 속에서 일반 원리를 정리해 내는 일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케이시, 그는 누구였나? 

 

에드가 케이시는 1877년 3월18일에 켄터키 주의 크리스찬 카운티에 있는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양친의 이름은 레슬리 케이시와 캐리 케이시였다. 부친 레슬리는 그 지방의 평화를 지키는 치안 판사였으며, 소규모 지주였다. 레슬리는 여러 번 벤처 사업에 손을 댔다가 연거푸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모친 캐리는 에드가를 낳은 뒤로 네 명의 여동생들을 낳았는데, 올라, 사라, 애니, 그리고 매리였다. 케이시 집안 식구들은 기독교 신자들이었으며, 에드가 역시 기독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3살이 되자 에드가의 일생을 암시하는 영적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드가는 성서의 말씀에 너무나 몰두해서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가 되었고, 이런 경향은 그의 일생토록 이어졌다. 13번째 생일날이 돌아올 무렵에 그는 이미 성서를 수십 번이나 정독한 상태였다. 1890년 5월, 집 근처의 숲에서 성서를 읽던 중에 에드가는 어떤 여성의 환영을 보았다. 

 

그 여성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에드가에게 말했다. "너의 기도가 하늘에 들렸단다. 네가 가장 소망하는 것이 뭔지 말해보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마." 에드가는 그녀의 등 뒤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을 희미하게 식별할 수 있었으므로, 천사가 나타난 것임을 즉각 깨달았다. 에드가는 대답했다. "저는 무엇보다도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특히 병든 아이들에게요." 

 

천사는 곧 사라졌다. 에드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어머니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 다음날 에드가는 학교에서 넋이 나간 채 집중을 할 수 없었으므로 받아쓰기 시험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다. 선생님은 삼촌 루션이었다. 삼촌은 아버지에게 어린 몽상가인 조카 에드가한테 강도 높은 학습을 시켜야 하겠다고 일렀다. 에드가의 부친은 에드가에게 낱말 철자들을 학습시키려고 했으나, 학습 결과가 신통치 않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에드가를 두들겨패서 쓰러뜨려버렸다. 

 

그때 에드가는 다시 천사가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잠을 좀 자거라. 그러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래서 에드가는 낱말 사전을 베개처럼 베고 잠깐 낮잠을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자 마치 사진을 찍은 듯이 사전을 통째로 줄줄 외울 수가 있었다. 부친은 에드가가 갑자기 사전을 통째로 외우자 너무나 놀랐다. 에드가의 학업 성적은 나날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책을 베고 잠을 자기만 하면 시험에 합격했던 것이다. 

 

2년 뒤, 또 다른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에드가가 야구공에 척추를 얻어맞는 사건이 일어났던 때였다. 그는 야구공에 부상한 뒤로 한동안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부친은 에드가가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그는 잠이 들자 찜질 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그 찜질 약을 바르면 아침이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들은 황당해 했으나 다음날 아침에 에드가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나자 몹시 기뻐했다. 

 

1892년부터 1901년까지 에드가에게 별다른 초자연적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그 지방의 한 사회인으로서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살았다. 그는 1897년에 거트루드 에반스와 약혼했으며, 1903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1900년, 그의 나이 23세 때에 에드가는 보험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가정집을 방문하는 보험 설계사였다. 그러나 병에 걸려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직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901년 3월31일, 그는 처음으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일약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홉킨스빌(Hopkinsville)의 회계사였던 앨 레인의 암시에 따라 최면상태로 들어갔다. 앨은 통신 교육으로 안마 요법을 터득했던 사람이었다. 에드가는 최면 상태에서 자신의 질병을 진단했다. 그 진단은 이러했다 

 

"이 육체는 깨어 있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등 조직인 성대 근육의 일부가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경 조직이 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적 요인이 신체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 질환은 이러한 무의식 상태에서 계속 암시를 줘서 환부의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줌으로써 치유될 수 있습니다." 레인은 이 말에 따라 암시를 주었다. 에드가의 부모도 역시 입회해서 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에드가의 목구멍에 혈액이 돌아 성대 부분이 빨갛게 되고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암시를 주고난 뒤에 에드가의 의식이 깨어났다. 

 

에드가는 십 개월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목청이 제대로 돌아오자 치유의 초능력자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사진사의 조수로 일하는 한편 레인의 환자들을 위해 초능력으로 "리딩”을 해 주었다. 1902년에는 저명한 지역 명사의 딸, 에이미 디트리히의 치료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거트루드와 1903년에 결혼한 이후로 에드가 부부는 켄터키 주의 보울링 그린에 정착했고, 에드가는 사진사로 개업했다. 그들은 4년 뒤에 아들 휴즈 린 케이시를 낳았다. 1909년, 케이시는 알라바마로 갔다. 사진 일을 하러 간 것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켄터키에 남아 있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홉킨스빌에 들렀다. 그때 그의 부친이 그를 웨슬리 케첨 박사에게 소개했다. 동종 요법 의사인 케첨 박사는 케이시의 초능력을 시험해보았다. 박사는 상당히 좋은 느낌을 받았고, 그 실험 결과를 뉴욕 타임스(1910년 10월 9일자) 신문에 소개했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문맹자가 최면에 걸려 의사가 되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전국적으로 여러 신문에 재차 소개되었다. 그때까지 간혹 쓰일 뿐이었던 그의 재능은 이제 부업이 아니라 전업이 되었다. 케이시는 홉킨스빌로 돌아와서 케첨 박사와 손을 잡고 초능력 진찰 전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계속된 성공이 보도되고 유명해지자 1911년에 하바드 대학교의 휴고 뮨스터버그 박사가 조사하러 왔다. 그 역시 케이시의 기묘한 능력에 대해 호의적인 보고서를 써 주었다. 

 

1912년에 에드가는 케첨 박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알라바마 주의 셀마로 이주했다. 사진사로 다시 개업할 참이었다. 이번에는 아내 거트루드와 아들 린도 함께 데리고 이주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11년간을 살았다. 1918년에 둘째 아들 에드가 에반스 케이시가 태어났다. 그리고 2년 뒤, 에드가는 맏아들 휴즈 린을 데리고 데이빗 칸과 함께 텍사스로 갔다. "케이시 석유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였다. 칸은 켄터키 주에서 5년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다. 케이시의 초능력이 석유 탐사 사업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케이시는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 뉴욕, 피츠버그, 시카고, 덴버 등등의 도시에서 대중 앞에 나서 최면상태에서 예언하는 "리딩"을 시연해 보였던 것이다. 

 

1920년대 중반은 케이시의 일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절이었고, 또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시절이었다. 1923년 9월 10일, 셀마에서 케이시는 글래디스 데이비스를 비서로 고용했다. (역주: 그녀는 케이시 사후에도 연몽회의 핵심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녀가 할 일은 케이시의 남은 생애 동안 모든 "리딩"을 꼼꼼히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셀마에 정착해서 종생토록 "리딩”에 전념하려던 케이시의 계획은 아더 래머스가 조사차 찾아옴과 동시에 곧 중단되고 말았다. 

 

1923년 후반은 케이시가 의료적 치유의 목적으로 "리딩"을 시작한 지 22년이 되던 해였다. 어쨌든 그 해는 그가 초능력 "리딩"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전체 경력의 절반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바로 그 해에 케이시는 그의 생애를 뒤바꿀 전환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전환점은 아더 래머스와 함께 찾아왔다. 래머스는 오하이오 주의 데이튼에서 큰 출판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더 래머스는 강연회에 참석했고, 직접 "리딩”을 받았다. 

 

래머스는 신지학자였다. 그는 케이시의 "리딩"이 치유적 목적으로 쓰일 것만은 아님을 곧 눈치챘다. 그의 관심은 백색 형제단(the Great White Brotherhood), 마담 블라바츠키,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Lemuria) 등의 고대 문명들(동서예언방 참고), 고대 신비주의 학파, 점성술 등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었다. 케이시는 깨어 있는 의식 상태에서 래머스의 이야기를 듣고 몹시 당황했으나, 최면 상태에 들어가자 곧 래머스가 묻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술술 대답을 내놓았다. 

 

그 이후로 22년간 에드가 케이시의 초능력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럼으로써 그의 초능력 또한 최고조에 달했다. 그렇게 해서 한 초능력자의 특수 지각 능력으로 본 것을 기록한 것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철저한" 기록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래머스의 질문들이 촉매가 되어 불러 일으켜준 덕택이었다. 래머스는 케이시의 "리딩"에 너무나 매료되었으므로, 셀마까지 케이시를 따라왔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주제들에 관해서 수많은 "리딩"을 듣고 정리했다. 래머스는 케이시에게 데이튼으로 올 것을 종용했다. 점성술의 신비를 탐구해보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케이시는 점성술에 관해 "리딩"을 하게 되었는데, 대뜸 튀어나온 말은 래머스가 "전생에 수도승”이었다는 것이었다. 


윤회 사상은 일상 의식 상태에서의 케이시에게 전혀 낯선 사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데이튼에 살 때 행했던 "리딩"에 잘 나와 있듯이 우주 진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케이시는 윤회 사상이 자신의 성서에 대한 믿음과 어긋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며 걱정했다.


 

에이알이(A.R.E.)와 케이시의 말년

 

래머스가 고대 신비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 제낀 이후로 케이시의"리딩" 어록에서 밝혀진 신비 중에 점성술은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래머스는 곧 사업에 실패했고 더 이상 케이시의 작업을 계속 밀어줄 힘을 잃고 말았다. 그때 월 스트리트의 젊은 사업가 모튼 블루멘톨이 케이시에게 관심을 갖고 돕기를 원했다. 

 

블루멘톨의 도움으로 케이시 가족은 버지니아 주의 버지니아 비치로 이주했다. 케이시의 "리딩"에서 케이시 자신이 리딩 작업을 하기에 가장 길(吉)한 곳으로 점찍어 두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1927년 5월, 블루멘톨은 "전국 연구인 협회(the Association of National Investigatiors)”라는 명칭의 조직체를 창설했다. 케이시의 작업을 후원하고 그 결과를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였다. 

 

18개월 뒤에 버지니아 비치에 케이시 병원이 설립되었다. 이 병원에서는 유능한 의료진의 감독 아래 케이시의 리딩에 따라 환자들을 치료했다. 1930년에는 어틀랜틱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하여 블루멘톨과 케이시의 협력 관계는 한층 더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1931년 2월에 대공황의 여파가 밀어닥쳤고, 엄청난 지출 문제 때문에 블루멘톨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병원은 문을 닫았고, 협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한편, 1931년은 케이시에게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된 해였다. 그해 6월 6일에 한 무리의 후원자들이 케이시를 만나러 왔다. 새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조직의 명칭은 "연구 및 계몽 협회”였으며, 바로 다음 달에 사단법인 조직으로 결성되었다. 그 해 9월 14일에 처음으로 "연몽회” 내에 연구그룹이 결성되었으며, 케이시 "리딩” 어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신의 탐구(the Search for God)』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고, 이 시리즈가 전세계 수천 개의 연구 그룹에 속한 회원들이 교과서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1932년에는 계속 재정적 압박을 받아오던 애틀랜틱 대학교가 드디어 문을 닫았다. 1980년대가 될 때까지는 다시 문을 열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시기는 연몽회 연구그룹에서 엄청난 분량의 "리딩” 문서들을 끊임없이 정리해냈으며, 치유를 위한 기도 그룹(a healing prayer group)을 위해서 "리딩”한 문서들이 묶어져 나왔던 시기였다. 그리고 케이시의 남은 인생 동안 연몽회는 점점 발전해서 그의 업적이 세상으로부터 더더욱 많은 관심을 받도록 만들었다. 

 

케이시는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안정된 생활을 누렸으며, 그때까지 수십 년 동안 아쉽기만 했던 재정적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가족은 버지니아 비치의 악틱 크레슨트에 눌러 살았으며, 케이시도 역시 그곳에서 함께 살며 정원을 가꾸고 낚시를 즐기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1940년에는 연몽회 규모가 점차 커졌으므로 케이시의 집에 사무실을 하나 더 덧붙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노포크 제 1 연구그룹(Norfolk Study Group No. 1)이 『신의 탐구(A Search for God)』를 책으로 출간했다. 연구그룹의 "리딩” 어록 탐구와 여러 해에 걸친 내용 검증에 입각해 발행된 책이었다. 

 

1943년 3월, 토마스 수그루가 대단히 공감하는 입장에서 케이시의 전기 『강이 있네(There is a River)』를 써냈다. 이 전기는 대단한 갈채를 받았으며, 수많은 독자들이 케이시 "리딩” 어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잡지 《코로넷(Coronet)》에 케이시를 "버지니아 비치의 기인(奇人)” 이라고 부르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로 인해 케이시의 일은 더 많이 늘어났다. 케이시는 이미 자신에 관한 "리딩”에서 스스로 경고했었다. 건강을 위해서 무리하지 말고 하루에 2회 이상 작업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케이시는 대중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8회씩 "리딩”을 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과중한 일이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자 건강에 무리가 왔다. 

 

1944년 9월에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버지니아 주의 로우녹으로 휴양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곧 버지니아 비치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1945년 1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개월이 채 되지도 않은 4월 1일에 아내 거트루드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 두 아들 휴즈 린과 에드가 에반스는 모두 군에 복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몽회(A.R.E.)”에는 해박한 연구자들이 핵심에 있었다. 글래디스 데이비스, 하먼과 쥰 브로(June Bro) 부부, 그리고 메이 김버트 세인트 클레어였다. 그들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전쟁 중에도 또 전후에도 지칠줄 모르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드디어 1956년에 예상치 못했던 선물이 있었다. 전에 케이시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을 연몽회 명의로 다시 얻어 본부로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1975년에는 현대식 도서관과 회의장이 본부 옆에 증축되었다. 

 

지난 30년간 연몽회 회원은 3,300명에서 28,000명으로 늘어났고, 수십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이로써 케이시는 뉴 에이지 독자들에게 아주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오늘날 케이시 "리딩” 문서들은 그 전체 내용이 씨디롬에 수록된 것으로 구해볼 수 있다. 아울러 145,000쪽에 이르는 서신과 보고서들이 있다. 의료적 목적으로 행蠻痴?않은 "리딩” 문서들은 『에드가 케이시 라이브러리 시리즈(Edgar Cayce Library Series)』 24권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케이시의 업적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은 대중의 관심보다도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1998년은 케이시가 뉴 에이지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로 점찍은 때였다. 이제는 대학 강단의 학자들이 케이시의 업적에 대해서 객관적이면서도 공감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비록 케이시 자신은 일상 의식 상태에서 자신의 "리딩” 문헌들에 나타난 사상에 관해서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리딩” 문헌들에는 다양한 사상들이 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영지주의에서부터 현대 신비주의에 이르는 기독교적 신지학 사상이 들어있으며, 블라바츠키, 구르지예프(Gurdjieff), 융(Jung) 같은 신비주의 심리학 사상, 정골요법(osteopathy) 같은 대안의학, 기독과학 사상, 유니티(Unity 파(派), 20세기 미국의 종교운동; 건강과 번영을 지향함) 사상,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척추 지압요법) 요법, 건초 다이어트(Hay diet) 요법 등의 사상도 들어 있다. 

 

선사시대 문명에 관해서는 블라바츠키, 슈타이너, 익나씨우스 도넬리(Ignatius Donnelly) 등이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말은 모두 케이시 어록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앤드류 윅스(Andrew Weeks)는 케이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해 말한다. "케이시는 그 이전의 모든 사상적 흐름이 모여든 크나큰 호수다. 그는 그 모든 사상을 영감(靈感)의 힘으로 융화시켰으며, 또한 그를 통하여 이 모든 흐름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에드가 케이시의 "리딩” 문서들은 19세기에 부흥기를 맞이하여 다시 일어난 “고대의 지혜”로부터 현대의 뉴 에이지 사조(思潮)를 향하여 전체(holism)적이며 치유적 목적을 가진 접근방법에 불을 당긴 중요한 전달자였다.

 

폴 존슨(K. Paul Johnson)은 신지학 역사에 관해 여러 권의 저술을 썼다. 그 중에는 "신비사상가 열전", "신비사상 입문" 등이 있다.

 

옮긴이 박태섭씨는 동국대에서 불교학,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한학자로 전설적인 도학자 송화산, 송을산으로 이어지는 한학의 계보를 이어받았으며, "주역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소설 기문둔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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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회이야기 : 금생부모 글: 소련 머릿말: 나와 다른 사람의 전생에 대해서는 좀 썼는데 부모님 간의 연분은 이전에는 수수께끼였다. 최근 며칠 전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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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계란 3개와 함께 한 저승길

    생계란 3개와 함께 한 저승길은평뉴타운 조선시대 무덤서 계란 넣은 백자 문헌기록이 풍부한 조선시대에도 계란을 제사상에 올렸다는 흔적은 없다. 하...

    히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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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회하는 삶

    윤회하는 삶 신명계로 이동한 신명들은 성숙을 위해 윤회를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그래서 신명계에서도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한 만큼 나타나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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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성자 ,성현들이 전한 윤회의 비밀-인과응보

    *석가모니-선업(善業)을 쌓은 자는 행복한 곳으로, 악업(惡業)을 쌓은 자는 괴로운 곳으로 태어난다.전생을 알고싶으면 현생을 보라. 내생을 알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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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몸 속에는 영혼이 있을까요?

    인간의 몸 속에는 영혼이 있을까요?속사람 영체 인간은 본래 육체와 영체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체는 육체 속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또 ...

    오돌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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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회와 업

    최근 연예계 자살비보를 접하며 우리는 죽음과 삶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우리 삶의 시작과 끝 속에서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

    언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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